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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관광 정보 - 가나자와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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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年12月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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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로쿠엔은 가나자와시의 중심부인 가나자와성 인근의 고지대에 자리한 일본식 정원입니다. 넓이는 11.4ha. 가가 마에다가(家)가 여러 대에 걸쳐 완성한 정원으로, 그 규모와 아름다움 면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다이묘(大名) 정원의 하나입니다.

겐로쿠엔은 정원 가운데에 커다란 연못을 파고 군데군데 동산과 정자를 세워 그곳을 거닐면서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정원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커다란 연못(가스미가이케)을 파서 넓은 바다로 삼고 그 안에 불로불사의 신선이 산다고 알려진 섬을 배치하여, 장수와 영겁의 번영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정원에서는 겸비하기 어려운 6개의 경관(광대함와 유수함, 기교와 고색창연, 수천(水泉)과 조망)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 겐로쿠엔(兼六園)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가스미가이케 주변에는 일본의 전통악기(거문고)의 현을 조율하는 안족(雁足)을 디자인한 석등이 있어, 겐로쿠엔을 대표하는 경관이 되고 있습니다. 또 가스미가이케를 수원(水源)으로 하는 분수는 연못 수면과의 고저 차에 의한 자연 수압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봄에는 매화와 벚꽃, 초여름에는 철쭉과 제비붓꽃, 가을 단풍 등 나무들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매년 11월 1일부터 약 한 달간에 걸쳐 펼쳐지는 소나무 등의 유키즈리(雪吊り: 눈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가지받침)가 자아내는 환상적인 겨울 설경 등, 사계절의 자연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등 가신이었던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가 이곳에 입성한 이래 280년 이상에 걸쳐 마에다가(家)가 가가 지방(현재의 이시카와현과 도야마현)을 지배하였고, 그 당시 가나자와성이 마에다가(家)의 거성이었습니다. 화재에 의해 소실된 천수각은 재건되지 못했지만 다른 성곽 건물은 여러 차례 재건되었고, 이시카와(石川) 문은 1788년에, 산짓켄나가야(三十間長屋)는 1858년에 재건되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모두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근대에는 일본 육군의 거점으로, 그 후에는 가나자와대학의 캠퍼스로 사용되었습니다. 1996년에 공원으로 정비되었고, 2001년에는 히시야구라(菱櫓), 고짓켄나가야(五十間長屋), 하시즈메몬 쓰즈키야구라(橋爪門續櫓)가 복원되어 오픈하였습니다.

마에다가(家) 시절 가나자와성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외벽의 총안 등이 설치되어 있어 외부 침입에 대비한 요새 기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한편, 하얀 납기와, 하얀 회반죽에 기와를 붙인 문양의 벽 등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돌담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그 중에는 400년 이상 전에 세워진 돌담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1583년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의 가나자와 입성 때부터 1868년까지의 약 280년간, 가나자와는 마에다가가 지배하는 가가번의 조카마치(城下町: 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공업 중심지)였습니다. 나가마치 부근에는 가가번의 가신 8명 중 두 사람의 주택이 지어졌고, 또 상·중급 무사들이 사는 지구였습니다. 근대에 들어 가옥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좁은 골목이나 흙담등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흙담은 형틀 안에 돌과 흙벽을 채우고 눌러 만들었으며, 지붕에는 판자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 이상 된 흙담도 남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새로 복원된 것들입니다. 또 가나자와의 겨울은 눈이 많기 때문에, 눈이 녹을 때 토사가 벗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12월 초순부터 3월 중순까지 흙담에 거적을 씌워 둡니다.

또 부근에 흐르는 오노쇼(大野庄) 용수는 가나자와 최고(最古)의 용수(用水)로, 옛날에는 항구에서 시내로 물자를 수송하는 중요한 수로였습니다.

가나자와시 관광 정보(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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